어느 화가의 선과 울고 있는 맷돌

옛날 어느 외땬 산자락에
지독히 가난한 화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그 화가는 눈빛만은 늘 형형하였고
아랫마을 유지들은 그런 화가의 그림을 한점 가진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는 선 하나를 긋기 위해 며칠을 고민했고
그가 완성한 그림 한 점에는 그가 보낸 계절의 냄새와 고뇌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영혼의 거울'이라고 불렀고 그를 칭송했습니다.
그러나 화가는 늘 배가 고팠습니다.

어느 날,
마을의 모든 정보를 주무르는 거상이 화가를 찾아왔습니다.
거상은 금실로 수 놓은 보따리에서 기이한 물건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습니다.
"이게 뭡니까?"
"그것은 복제 맷돌이라네."
그러고는 그 맷돌을 화가 앞으로 밀었습니다.
"이보게 화가, 자네는 왜 그리 느리게 사나? 그래서 내가 도와주러 왔네. 이 맷돌에 그림을 한 점만 넣어서 돌리면,
자네의 붓 터치와 색감을 똑같이 박아 낸 그림이 순식간에 수천장 만들어 진다네.
자네는 이제 부자가 될거야. 내가 보장하네"
너무나 가난한 화가에게는 외면하기 힘든 매혹적인 소리였습니다.
화가가 그 매혹적인 소리에 손을 뻗으려 할 때, 곁에서 물을 길어 나르던 어린 제자가 깜짝 놀라며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안됩니다. 스승님, 저 맷돌은 스승님의 결과물은 베낄 수 있어도 붓 끝이 머물렀던 스승님의 시간까지 녹여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향기가 사라진 그림은 결국 사람들의 외면을 받을 것입니다. 그 그림은 결국 종이 조각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화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걱정말게. 나는 또 새로운 그림을 그리면 될터이니..."
가난의 무게가 너무 컸던 화가는 제자의 말을 뿌리치고 맷돌을 선택했습니다
거상의 약속대로 시장에는 화가의 그림이 넘쳐났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그 그림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화가의 그림을 보겠다고 화가의 작업실까지 험한 길을 오르지 않았습니다.
길거리 가판대에서 화가의 그림을 제목만 힐끗 보고는
싸구려 취급을 하며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림은 갈수록 흔해졌고 찾는 이는 없었으며
그 그림 앞에서 숨을 죽여 감동하던 것은 옛말이 되었습니다.
이미 쉬운 것에 빠른 것에 물들어 버린 화가는 너무 느리게 그림을 그리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거상은
이미 화가의 모든 화풍을 학습한 맷돌을 챙겨 다른 마을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렇게 화가의 가치는
무한 복제 된 종이 뭉치들 사이에 묻혀 잊혀졌습니다.
뒤늦게 후회한 화가는
작업실 주위에 어떤 것도 접근을 못하도록 검은 가시덩굴을 쳤지만
이미 세상으로 흩어진 자신의 영혼을 회수 할 길이 없었습니다.
화가는 텅빈 캔버스 앞에 다시 앉아 가만히 붓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감각은 무뎌지고 의욕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맷돌은 밖에서 여전히 화가 자신의 화풍을 뱉어내고 있었지만
정작,
화가 자신의 서명은 어디에서도 환대 받지 못했습니다.
맷돌은
화가의 선을 완벽히 복제했지만,
화가가 선 하나를 긋기 위해 견뎌온 '시간'만은 복제할 수 없었습니다.
화풍을 복제하기 위해 쉼없이 돌아가지만 결국,
화가의 영혼이나 고뇌까지는 갈아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무력감이
맷돌의 차가운 돌 틈 사이로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습니다.
***************
[우화 속 AI 인사이트]
맷돌 = 생성형 AI (Generative AI)
화가의 낙관 = 인간의 고유한 데이터(Originality)
맷돌의 눈물 = 기술적 한계 혹은 인간성에 대한 경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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